2009년 6월 17일 수요일

사람을 길들이는 법

사람을 길들이는 법!
제목이 저돌적이다. 아니 동물도 아니도 사람을 길들인다니! 무슨 저렴한 표현인가! 이를 좀 돌려서 말하면 내 사람으로 만드는 법으로 고쳐서 할 수 있겠다.
1. 유머
평상시에 내가 데리고 있는 인원들에게 틈만나면 유머를 구사한다.

오늘 훈련뒤에, 탐조인원에게 너희들 뭐야, 오늘도 너희들의 존재를 발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너희들의 그 마음 잠시 키핑해 둬, 잠시 키핑해 뒀다가 다음에 발현할 기회가 있을 때, 서울상공에다가 마음껏. 발현시키라구.

밑에 깔린 바탕을 모른다면 저게 웃긴 이야기인지 잘 모를 수도 있으나 처한 독특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내용이고 충분히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다.
유머를 틈 나는대로 구사한다. 조금이나마 유머의 소재가 있으면 그걸 걸고 들어가서 유머로 만들어 낸다. 평상시에 이런 생각을 하니까 보이는 전부가 유머의 소재이다.
평상시에는 이렇듯 유머를 구사해서 미소나 폭소를 유발시킨다. 스포츠, 연예인 뒷담화, 연애사, 게임등 가리지 않고 시시콜콜한 말도 자주한다. 그래서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관계가 어색한가 어색하지 않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리라면 그곳에 갔을 때 하던대로 자연스럽게 행동이 이어지면 나는 자연스러운 대상이고 하던 행동이 끊어지고 나를 신경쓰는 듯하면 어색한 관계이다.

2. 퉁명성
평상시에 유머를 통해서 자연스럽고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다가도 부하가 잘못했을 경우에는 넌지기 일깨워주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러 과격하게 때로는 육두문자까지 쓰는 경우가 있다. 퉁명스레 대하는 경우다. 단 이때 필히 주의해야 할것은 지적의 대상이 잘못이지 인격자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 험하게 질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크게 잘못을 했고, 순순히 넘어갔을 경우에는 또 같은 반복을 할 수 있어 머릿속에 강한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에서 해야한다. 나는 부하의 잘못을 크게 지적하고 뒤돌아 서고 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물론 대 놓고 잘해준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퉁명스레) 다른 인원들과 똑같이 대한다.
친철하고 자상한 사람의 인격성은 좋지만 아쉽게도 만만하게 보이기 쉽다. 많은 지휘관들이 부하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퉁명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다.

밤을 세워서 애써 문서를 만들어서 책상위에 올려뒀을 때, 부하는 칭찬 듣기를 바란다. 하지만 막상 그가 책상에 와서 슬쩍 곁눈으로 보고는 더 이상 거들떠 보지도 않고 엎어버린다. 부하로서는 시키지도 않은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 공을 들여서 애써 작성한 문서를 저런 식으로 내팽개치다니, 못내 속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반드시 인정받고야 말리라는 생각으로 더욱 더 큰 정성을 들여 문건을 만들 수 있다. 만약에 그 문서를 보고서 어이구 잘했다라고 말해버렸으면 이런 오기를 꺼집어 낼 수 있겠는가.

일부러 과격하게 야 이 새끼야. 병신이냐 등의 말을 할 때가 있다. 이것은 흔치 않은 경우이며 주변에 있는 부하들도 마땅히 혼이 나야하는 상황이다. 질책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인식하고 있을 정도로 뚜렷하게 잘못을 한 경우에 과격하고 때론 육두문자를 사용해서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면 다음번에는 같은 잘못을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만약 혼이 나야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제제를 가하지 않고 넘긴다면 어떻게 되겠나. 이러면 갈 데까지 가버린다. 그리고 일관성없이 어떤 때는 질책을 하다가 어떤 때에는 웃어넘기거나, 어떤 놈은 질책을 하다가 어떤 놈은 웃어넘겨버리면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3. 전문성
교범, 규정은 판단의 기준이 되고, 참조의 기본이 되는 것이기에 이에 대해서는 복종하는 경향이 아주 크다. 전문지식을 많이 알고 있을 때에는 감탄하게 되고 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교범을 여러번봐서 이런경우에는 이러이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고 주의사항으로는 이런 것이 있다라고 교육을 시킨다. 그러한 이유는 이러이러하기 때문인데 교범에는 그렇게 나와 있어..

4. 당근과 채찍
잘했을 경우에는 당근을 주고 못했을 경우에는 채찍을 주는 것은 잘하는 것은 부추기고 못하는 것은 낮추는 결과가 생긴다. 이때 잘하고 못하고의 절대적인 기준이 내가 된다면 (높은 자리로 갈수록 권한이 많아져 좌지우지, 쥐락펴락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근본은 법규다.) 부하는 나의 호불호를 따져 행동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좋고 나쁨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어야하고, 좋은 일을 했을 때에는 당근을 주고 나쁜 일을 했을 때에는 채찍이 빠트리지 않고 제때에 주어져야 하며,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말을 배우고, 사회 관습을 배우고, 여러 재능(피아노, 테니스, 수영, 요리 등)을 익히는 것 등 모두가 반복에 의해서 길들여진 것이다. 지금 나의 몸뚱아리는 지금까지 여태껏 먹고 마시고 호흡한 결과이며, 지금 나의 모든 정신적 유산은 길들여진 결과이다.
태어날 때 천부적인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하나의 단면만 보더라도 사람은 길들여지는 것이 천성이자 숙명인 존재인가 보다. 길들여지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지마라. 지금의 나는 길들여진 결과니까. 누구나 길들여지지만 차이는 있다. 길들여진 결과물에 자신의 창조물을 바탕으로 타인을 길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길들이느냐 길들여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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